어떤 일에 습관이 생기는 데에는 약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매일 해야 그 일을 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저녁에 강론을 쓰고 있다. 본래 원고 없이 강론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었는데, 확실히 글로 정리하니 자신감도 더욱 생기고 늘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복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좋다. 아주 오랜만에 전에 쓰던 블로그를 찾아 계정을 회복하고 강론을 쓰던 기억이 난다. 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아직 21일이 되지 않아서인지 성경을 읽고 묵상한 후 글로 옮기는 것이 힘겨울 때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과 다음 날 좀 더 나은 강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오늘도 글을 쓴다. 하지만 어제와 그저께는 너무 피곤했다. 이틀을 쉬고 나니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어렵다. 그래서 어떤 강론이 써질지 모른 채 우선 첫 글자를 쓰기로 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말을 꺼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하기까지 하다.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고 괜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가시덤불'처럼 나를 찌른다. 이 가시덩굴을 지나야 좋은 땅에 다다를텐데 나는 늘 너무 멀리 보려 하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흠인가 보다. 그래서 이 걱정의 가시들이 나를 찔러 스스로 상처를 만든다. 그래... 일단 오늘은 해보자... 열매를 거두려 씨앗을 뿌리지 말고 씨 뿌리는 재미, 씨가 커가는 기쁨을 느껴보자.
오늘도 나는 강론을 썼다.
언제쯤이면 습관의 '길'이 생겨서 망설임의 잡초를 밟지 않고 보드라운 땅을 만질 수 있을까.
오늘도 일단 첫문장을 던진 후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커다란 '바위'를 만난 것처럼 생각이 진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위를 깨는 것은 매일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하기에 돌같이 굳은 머리이지만 복음의 물방울을 계속 적셔보기로 한다. 언젠가 이 바위에도 틈이 생길지 모르니까.
강론을 쓰고 업로드한 후에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가시덤불'처럼 잡다한 생각이 나를 찔러서 내가 남긴 단어 하나, 표현 한 토막까지도 머리에서 맴돈다. 이럴 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고 교우들의 아량을 신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걱정의 가시를 뚫고 열매를 맺을 수 없을 테니...
그분께서는 '길', '바위', '가시덤불'을 지나야 '좋은 땅'이 나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어떤 단계인가.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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