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씨를 처음 보던 날은 몹시도 무더웠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과연 호스피스 병동에서 교리를 배울 수 있을까, 세례를 받는다 해도 신앙생활을 하며 성당에 다닐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마리아씨를 만났을 때 대장암 말기인 그분의 배는 몹시도 불러있었고 바로 눕기조차 어려워 비스듬히 누워 내게 말했었다.
“신부님,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어요…”
나는 세례를 받는다고 병이 낫거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분은 “저도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들어 나를 보는데, 마치 예수님을 바라보는 듯 간절했다.
나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세요, 정말 하느님을 원하고 있는지…”라고 말하고는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분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가져본 적 있었을까,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그분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세례를 받고 싶으세요?” 대답은 변함이 없었고 눈빛은 너무도 또렷했다.
수녀님들과 간호사선생님들이 한데 모여 세례를 드리던 날,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고 눈물을 끝없이 흘렸다.
내가 "왜 그렇게 울어요...”라고 물으니 “그냥 너무 좋아서요…”라고 했다.
얼굴은 너무도 야위어있었고 숨쉴때마다 조여 오는 통증 앞에서 마리아씨는 “너무 좋아서요”라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리아씨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이제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루어질거예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분은 소원이 또 있다고 했다.
“우리 승호와 정호가 잘 컸으면 좋겠어요”
나는 다시 한번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마리아씨는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 소원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승호랑 정호가 먼저 떠난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그 말에는 나 역시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 소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음날 마리아씨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임종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면서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마리아씨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씨, 첫 번째 소원을 들어주신 하느님께서 두 번째, 세 번째 소원도 모두 들어주실 것입니다.”
장례미사를 드리던 날 승호와 정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내가 편지를 써줄 테니 마리아씨의 아들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승호야, 정호야,
너희 어머니는 정말 선하신 분이었어.
어머니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을꺼야.
그 눈빛은 일생을 착하게 살아오신 분들만 가질 수 있거든.
승호와 정호야,
엄마가 너무 보고싶을 때면 거울을 보렴.
엄마의 그 눈빛이 너희 안에 있으니까.
엄마의 눈빛으로 세상을 보면 너희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야.
혹시라도 먼저 떠난 엄마가 원망스러운 때가 있거든 이 편지를 읽어주기 바래.
난 어머니와 약속했어.
세 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질 거라고.
하느님께서 어머니의 바램을 모두 이루어주실 거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