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서로 다른 '너와 나'가 한 마음으로 일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부부든 커플이든 직장이든 가족이든 마음이 맞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다는 것이 정말 될만한 일일까
가톨릭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뭐 기도를 열심히 하라던가, 참고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일치'의 기능이 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삼위일체'이다
삼위일체란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다'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애매모호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이면서도 하나가 아니다', 즉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이다
일치, 곧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일치'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것은 '삼위일체'이지, '삼위일치'가 아니다
일체나 일치나 말장난 같긴 하지만
삼위일체의 '일체'는 '일심동체'라는 의미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름을 인정해야 같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잘 맞는 커플이 있었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서로가 마치 잘 들어맞는 조각처럼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참으로 안맞는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자는 집에 가서 얘기하기를 원하고 여자는 카페에서 대화하기를 바라고...
같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던 만큼
서로 다른 점이 발견될 때는 그 파장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안맞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커플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들은 '잘맞는다'는 것을 '완전히 같다'로 이해했다
서로 잘 맞는다는 것은 비슷한 점이 다른 사람들 보다 많아 맞춰가기 쉽다는 것이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는 하다
그래서 서로 다투고 삐지는 과정 중에서도 서로 다른 너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삼위일체이다
가령 서로 잘못한 부분은 있다든지,
다른 너와 나 사이에 교집합도 있다든지
싫은 면들 속에서도 좋은 면도 많다든지...
그래서 너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
삼위일체의 핵심인 제3의 존재이다
가톨릭에서는 이 존재를 '성령'이라 부른다
누군가와 마음이 안맞아 다투고 나서도
'내 잘못인가?'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존재의 덕분이다
또한 '다르게 말할 걸 그랬나?라고 잠시 반성이 드는 것도 이 존재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역할로
서로 다른 나와 너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너무 안맞는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 성령의 역할은 적절히 거리를 두게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결단을 내리도록 돕는다
모든 사람과 다 잘지내는 것,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은 욕심일테니까
나는 술을 좋아한다
맨정신에는 잘 안되던 대화들도
건배!하고 외칠 때면 왠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든다
서로 다른 나와 너, 그리고 술잔
어떠한 매개체로 인해 하나가 되는 것,
이 또한 삼위일체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란
존재의 같음, 혹은 존재의 비슷함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질 수 있음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나와 너의 비슷한 생각과 성향들이다
일종의 교집합이라고나 할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저자 '킴벌리 커버거'는
인간 사이의 가장 중요한 것을 '공유점'이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참아주며 맞춰주는 것이 아니고
그가 나를 이해하며 견뎌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공공의 분모로 마음을 모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와 나, 그리고 제3의 존재
그리고 공통된 목표, 혹은 교집합을 갖는 비슷한 점
이것이 다른 사람과의 일치를 이루게 한다
그리고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일체, 곧 삼위일체가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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