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한다. 잘 마시지는 못해도 좋아는 한다.
왜냐하면 술잔을 부딫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왠지 술잔을 짠! 하고 마주칠때면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된 듯 하다.
그 사람과 나는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적어도 건배한 이 술을 마시겠다는 목표는 같을테니까
사실 마시는 양과 속마음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공통분모가 생긴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나와 너’를 잇는 것은 '공통분모'이다
내가 술먹고 꼬장부릴 수 있다면 너도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할 지모른다면 그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도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이해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공통의 관심사는 훌륭한 교집합이 된다. 운명 공동체까지는 아닐지라도 너의 행복이 나에게 기쁨이 되고 네가 불편하면 나까지 복잡해진다는 상호결합은 너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려면 그 사람을 보면 안된다.
저런 성격에, 또 내 성향으로 어떻게 마음을 맞출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다보면 끝도 없이 어긋나기만 한다.
그래서 서로 낯선 사람 둘이 만나려면 ‘중매쟁이’, 즉 ‘중개자’가 필요하다
이 둘은 서로의 교집합이 되어 서로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을 사고 팔 때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계약하려면 ‘중개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 중개사, 곧 중개자는 서로의 교집합이다.
그래서 서로의 이익에 부합되고 각자의 필요를 조절해준다. 다시 말해 같은 목표를 적절한 수단으로 맞춰주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이 중개자를 ‘성령’이라 부른다.
천주교 신자들이 몸에 십자가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 다르지만 성령이라는 중개자, 교집합, 동일 목표의 힘으로 하나가 된다’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때면 성호경을 긋는다. 그래서 이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찾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그 중개자의 덕분으로 나와 전혀 다른 이 사람과도 하나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하다하다 안되면 술마시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