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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ilia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복음에 따르면 성령의 효과는 '평화'와 '용서' 두 가지 이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제자들의 심리는 가장 먼저 '두려움'이다.

뭐가 두려웠을까...

하긴 스승이 잡혀 죽었으니 이제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라고 믿는 것이겠지...


이렇듯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과거의 아픔이 반복되리라는 부정적 기대가 두려움을 가져온다.


또한 자신의 예측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우리에게는 '예언 기능'이 없음에도

나의 예감이 현실이 될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두려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예측, 예상, 예감에서 온다.

그리고 이 예측은 '문을 잠가 놓게' 한다.

마음을 닫게 하고 대화하지 않게 하며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막게 한다.


예측은 자기가 하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귀를 막고 입을 막으니

진짜로 두려움에 갇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서킷 브레이커', 즉 돼지가 내리막길을 달리듯 하염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런 제자들의 '가운데'에 그분께서 서신다.

그리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신다.

분명 두려움의 반대말은 '평화'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평화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문을 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잠그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무엇이 '가운데'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비중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도 비율이 좋아야 예뻐보인다

마음도 비중에 따라 어떤 마음인지로 나뉜다.

'마음이 어때?' 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이 마음도 있고 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어떤 생각이 가운데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의 특성은 

하도 고요하고 조용해서

자꾸 변방으로 밀려난다.

두려움이라는 시끄러운 녀석은

돈받기 위해 달려드는 계약자처럼

내 마음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도무지 나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예측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평화를 밀어내며

평화가 밀려난 상태가 분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평화롭지 않다면

두려운 것이고

평화롭지 않다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도 있고 분노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면

어느 것이 가운데에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두려워 문을 잠근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하신 행동은

1. '가운데' 서다

2. '평화'를 말하다


그리고 세번 째는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성경에는 제자들이, 그러니까 두려워 문을 잠근 제자들이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두려움은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지나친 예측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 것이고

미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상태가 두려움이다.


그런데 보고나니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은 보여주신다.

하지만 이상하다.


두 손과 옆구리를 봤는데 왜 기쁘지...

마치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나도 힘들었었어... 나도 상처가 있어... 하지만 이렇게 떡하니 가운데 서있잖아...'라고

자기 고백을 하신 것일까...


제자들이 기뻐하자마자 그분은 다시 말씀하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를 주는 첫 번째 방법은 '보여주는 것',

즉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는 것이었고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자

평화의 두 번째 방법으로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신다.


평화의 반대는 두려움, 곧 문을 잠그는 것인데

평화를 얻고 나면 문을 열고 보내신다.

보내어질 용기, 나갈 용기가 없는 상태가 두려움이고

보내어져도 괜찮은 기쁨이 평화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용서'이다

용서는 두려우면 못한다.

'또 그러면 어떻게 해'

'다시 아프면 어떻게 해'라는 예측은 두려움을 낳고

문을 잠가놓아 용서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평화가 너희와 함께'와 '성령을 받아라'는 동의어이다.


그래서 성령은 평화이고 기쁨이며 용서이다.

하지만 성령이 없는 상태는

두려움이고 잠금이며,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아픔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고여 그대로 남아있는 것... 이것이 문을 잠가 놓은 것의 결과이다.


그리고 여기서 두려움이 나온다.


결론은,

문을 여는 것도,

용서도,

기쁨도,

내 맘대로 안되고 성령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내 맘대로 다 되면 내가 하느님이지...


성령을 주세요 

제게도  보여주세요

저의 가운데에 서주세요... 라고 청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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