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ilia

산 이들의 하느님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대답이 생뚱맞다

지금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부인이

죽어서도 부인이냐, 이 결혼관계가 죽어서도 유지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마르 12,25)

그러니까 결혼관계는 살아있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고

죽어서는 천사들과 같아서

결혼이고 뭐고 다 없다는 뜻인듯 하다


하긴 죽어서도 필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죽음, 곧 저너머의 세상에서 조차도

결혼이며 취업, 집마련 이런 것이 똑같을리 없으니까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혀 새로운 세상, 전혀 새로운 원리

그것이 죽은 후의 삶이다


그렇게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지루하고 압박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인듯 신비롭게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알고 계신 듯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 12,27)

죽음이, 곧 죽어서 가는 세상이

지금과 전혀 다른 개념의 것이어도

그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생뚱맞다

갑자기 이 말씀이 왜 나오는지...

마치 죽고 나서의 세상이 새로워도 지금이 좋으니 관심 꺼라...고 하시는 듯 하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뜻일런가

나는 항상 다음 세상을 그리워했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 되면 뭔가 좀 다를 줄 알았고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그리고는 그 로망이 계속 이어졌다

대학생 때는 서품받고 신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신부가 되고 나니

저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 여기가 아니면 좋겠다

이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지금을 살지 못했다

내일을 궁금해하느라

혹은 어제를 후회하느라

오늘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아주 오래된 네비게이션을 

차에 달고 있다

왜 안바꾸냐고 물었더니 사면 신형 나오고 금방 구형될테니

아예 사지 않는다고 했다


언듯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한데

그러면 평생 네비게이션 사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무엇이든 사는 순간 구형되고 중고되는 것이니까


그래도 나는 구형을 각오하고

최신모델을 즐기고 싶다

그러다 또 다른 모델 나오면 그걸 즐기면 되지


간혹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죽으면 어떤 세상에 사느냐고

난들 아나... 안죽어봤는데


하기야 해봐야 안다고 하면

나야 결혼생활을 안해봤으니

결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


그러니 해보지 않고도 상상이며 생각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상상과 상념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이러다 무엇이 될까


그래서 지금을 살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 받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불안함과 조급함은

오늘의 기쁨을 놓치게 한다

혹시 그분께서도

괜시리 책상 앞에 앉아서 정확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은

죽음에 대한 토론하고 있지말고

오늘을 살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나에게 묻는다

'너 지금 뭐해?'

'나? 지금 쇼파에 앉아서 다리 뻗고 술마시면서 성경읽어...'

그럼 감사해라...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해라


하느님은 내일의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의 하느님이시니까

그 분께서는 오늘의 일용할 축복을 주시니까

오지 않은 내일을 생각하느라

가버린 어제를 생각하느라

오늘의 선물을 놓치지 말고 말이다




'Homil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게 전부를  (0) 2017.06.09
기꺼이 기쁘게  (0) 2017.06.08
소출의 얼마를 받아오너라  (0) 2017.06.04
평화가 너희와 함께  (0) 2017.06.03
너는 더 나를 사랑하느냐  (0) 2017.06.01